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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건강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이 몸에 새겨지는 방식: 신체기억의 과학

by 요가루나님의 블로그 2025. 5. 17.

“나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문장은 트라우마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문구입니다. 격렬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사건이 단순한 기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몸의 감각, 근육, 호흡, 생리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심리적 외상이 뇌와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회복을 위한 과학적 접근법들을 살펴봅니다.


1.트라우마란 무엇인가?

트라우마(Trauma)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압도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 사건 이후, 신체와 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반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교통사고, 폭력, 전쟁, 학대, 자연재해뿐 아니라, 관계 내에서의 지속적인 무시, 수치심, 통제가 누적되어 생기는 **복합 트라우마(complex trauma)**도 포함됩니다.


2.뇌는 어떻게 트라우마를 저장하는가?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사건처럼 시간순, 논리적 이야기로 저장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생존과 관련된 뇌 구조인 편도체(amygdala), 해마(hippocampus), 시상(thalamus), 그리고 자율신경계가 트라우마 반응을 빠르게 ‘각인’합니다.

1. 편도체: 경보 시스템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고 신체를 ‘투쟁 혹은 도피’ 모드로 전환시킵니다. 트라우마 이후에는 편도체가 과민해져, 사소한 자극에도 경고를 울리며 과잉 반응을 유도합니다. 예: 문 닫히는 소리에도 과도하게 놀라는 현상.

2. 해마: 기억의 왜곡

해마는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기억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심한 스트레스 하에서는 해마 기능이 억제되어, 트라우마 기억이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형태로 저장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처럼 생생히 재경험되기도 합니다.

3. 시상: 감각 필터의 왜곡

시상은 외부 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관문입니다.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시상이 감각 자극을 필터링하지 못해, 냄새, 소리, 촉감 등이 그대로 충격적 감정과 연결되어 각인됩니다.


3.신체는 어떻게 외상을 기억하는가?

심리적 외상은 근육, 장기, 호흡 패턴, 체온 조절, 면역 반응 등 신체 전반의 기능에도 깊이 새겨집니다. 이를 ‘신체기억(somatic memory)’ 또는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이라고 합니다.

1. 근육의 긴장과 경직

트라우마 이후 자주 나타나는 신체 반응 중 하나는 지속적인 근육 긴장입니다. 이는 몸이 무의식적으로 위험에 대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학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깨를 움츠린 채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호흡 패턴의 변화

외상 후 호흡은 얕고 빠르며 불규칙해집니다. 이는 교감신경 항진 상태를 지속시키고, 만성 불안 및 공황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내장기관과의 연결: 장-뇌 축

장(腸)은 ‘제2의 뇌’라 불릴 정도로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트라우마 경험자는 종종 소화 불량, 과민성 대장증후군, 식욕 이상 등의 문제를 겪습니다. 이는 자율신경계의 불균형과 장내 미생물 불균형 때문입니다.


4. 몸을 통한 치유: 최신 트라우마 치료법

최근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트라우마 회복에서 ‘몸’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말로의 치료보다, 신체 감각을 회복하고 조절하는 방식이 더 깊은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연구들이 다수 발표되었습니다.

1. 감각운동치료(Sensorimotor Psychotherapy)

몸의 감각, 움직임, 자세 등을 탐색하여 트라우마 반응을 인식하고, 신경계의 자기 조절 능력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2. 소매틱 경험(Somatic Experiencing)

피터 리빈(Peter Levine)의 이론에 기반한 접근으로, 몸이 억압한 반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하여 **“신체에 갇힌 에너지”**를 방출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3. 요가 및 호흡치료

트라우마 요가(Trauma-Sensitive Yoga), 복식호흡, 심장 호흡(coherent breathing)은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여 긴장을 완화하고 신체 안정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EMDR 및 뇌파기반 치료

양쪽 눈의 움직임을 유도하며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재조정하는 EMDR은 특히 파편화된 외상 기억을 재통합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 마치며: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자

트라우마는 단지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기억합니다.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굳어지며, 어떤 감각이 일어날 때 우리는 과거의 외상을 현재처럼 재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몸은 또한 치유의 문이기도 합니다. 몸의 신호를 인식하고, 안전하다는 감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느리고 섬세하지만, 가장 강력한 회복의 경로가 될 수 있습니다.